서울퀴어퍼레이드가 진행된 지난 7월 1일, 서울에서는 '노프라이드파티'가 진행되었다. 자긍심 정치만으로는 포섭될 수 없는 성소수자의 다양한 삶과 권리를 논하기 위한 정치적인 자리가 탄생한 것이다.
원문 작성: 권태
원문 검토: 미겔
번역: 미겔(스페인어), 지니(영어), 츠키(일본어), Van(중국어), 미겔(카탈루냐어)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진행된 지난 7월 1일, 서울에서는 ‘노프라이드파티’가 진행되었습니다. 노프라이드파티는 성노동+약물이슈 연구모임의 주관과 성노동자건강권연구모임,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성별이분법에저항하는사람들의모임 여행자, 비거니즘 단체 엄살원, 약물이슈 연구모임POP, 외국인보호소폐지를위한물결 IW31, 한국농인LGBT 의 주최로 진행된 행사입니다. 노프라이드파티 준비팀은 그들이 자긍심 고양 위주로 진행된 성소수자 ‘프라이드’의 정치와 불화하는 존재임을 밝히며, 성소수자 ‘프라이드’라는 말에서 배제된 “불법 존재”들의 이야기를 담아냈습니다.
노프라이드파티의 탄생 배경에는 다국적제약회사‘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의 서울퀴어문화축제 참여 역시 영향을끼쳤습니다. 길리어드는 PrEP에사용되는 '트루바다'를 생산하는기업입니다. 길리어드가 2년연속서울퀴어문화축제에참여한것을규탄하며, ‘한국 청소년·청년 감염인커뮤니티 알’ 등은 2023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진행되는 현장에서 집회를벌이기도하였습니다.
이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각국의 퀴어퍼레이드 등에 후원의 명목으로 투자하는 돈이 ‘핑크머니’에 해당한다는 비판에 근거합니다. 성소수자 인권을 핑계로 각 기업의 반인권적 행보를 숨기려는 시도는 ‘핑크워싱’으로 일컬어지는데요, 끊임없이 특허를 연장하며 독점적 이윤을 추구하는 길리어드의 후원금이 단순한 후원금으로만 해석될 수는 없다는 비판 역시 같은 맥락을 공유합니다. 이에 대해 한국 청소년·청소년 감염인 커뮤니티 알은 길리어드가 말하는 “성소수자 시민권은 결국 소비자의 권리로 치환되어 비싼 약을 살 수 있는 능력에게만 국한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며, 성소수자의 건강권을 이윤의 논리로 환원하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핑크워싱에 반대하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노프라이드파티의 주최측은 대학 퀴어 동아리와 대사관 부스는 채택하나 성노동자 부스는 탈락시키는 서울퀴어퍼레이드의 ‘공정한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또, 농인을 초대할 방안을 고민하거나 성소수자의 인권을 반영하는 수어통역을 마련하는 것이 아닌 “농인이 올지도 모르니 배치하는” 방식의 수어통역에 반기를 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들은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약물 중독자나 정신질환자가 배제되는 기제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청소년이 참여하지 못하는 애프터파티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장의 오픈마이크에서는 다양한 활동가와 성소수자 당사자 등이 발언을 하였고, ‘프라이드’만으로는 포섭될 수 없는 성소수자의 삶과 권리를 포착하기 위한 행동들이 오고갔습니다. 자긍심 정치만으로는 환원될 수 없는 성소수자의 구체적인 삶의 양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때입니다.
아래는 노프라이드파티의 취지문 본문입니다.
<‘프라이드’가 부끄럽게 여기는 불법 존재들의 노 프라이드 no pride 파티>
퀴어 망명자들의 반-자긍심, 노 프라이드 파티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존재 자체가 불법인 비국민, 이주노동자, 홈리스, 성병캐리어, 각종 정신병자, 장애인, 노출광, 약물 사용자, 복장전환자, 성중독자들을 포함하는 각계 각층의 퀴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퀴어가 정상 사회의 긍정과 존중을 얻는 일에 방해가 되는 속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퀴어, 못생긴 퀴어, 춤을 출 줄 모르는 퀴어, 멍청한 퀴어, 더럽고 불쾌한 퀴어, 범죄자인 퀴어, 아픈 퀴어, 병을 전파하는 퀴어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정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 없고, 갖고 싶지도 않습니다.백인을 선망하고 유색인을 경멸하는, 외국인구금소가 건재한 사회.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거부하고, 바이러스와 감염인을 공동체 밖으로 몰아내며, 약물 사용자가 처한 삶의 조건을 외면하는 사회. 진보 정치 마저 성노동자 범죄화에 동참하는 사회, 이 사회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게 여겨지는 우리 존재는 퀴어 정체성을 긍정하고 자긍심을 고양하는 프라이드 정치와 불화합니다.
우리의 이런 ‘다양성’ 또한 언젠가 프라이드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온 현실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정상적인’ 퀴어들의 프라이드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프라이드 정치가 고양하는 자긍심 반대편으로 밀려났던 구체적인 경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퀴어라고 해서 전부 그렇지는 않다, 일부의 문제다”라는 말에서 자꾸 일부를 담당하게 되는 우리의 이슈는 종종 퀴어의 이슈가 아닌 것으로 분리되고, 퀴어 커뮤니티 내외부에서 논의되지 못하도록 은폐됩니다.
우리는 이제 경찰의 차벽 밖으로 나가려 합니다. 경찰은 우리를 지원하고 보호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경찰의 단속을 겪으며 경찰 폭력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안전을 명목으로 배치된 경찰력은 경찰의 폭력성을 세탁하고 퀴어 가능성을 제한합니다.
우리는 이제 대기업 부스와 대사관 부스 사이에서 빠져나오려고 합니다. 주변화된 퀴어들을 감금하고, 착취하는 거대 자본과 국가 권력에 문제의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퀴어를 수탈하면서도 퀴어 프라이드라는 간판을 내세우는 권력의 교묘함에 분노합니다. 우리는 이들이 이 세계의 불평등을 심화하는 인종적, 성적, 계급적 권력의 결과이자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멋진 조명 아래서 비싼 스테이크를 써는 프라이드를 거절합니다. 그 조명은 우리의 빈곤을 비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늘 속에 가려진 우리 중 누군가는 스테이크를 써는 사람보다 스테이크가 된 동물 쪽으로 가까이 가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일부 퀴어들이 목소리를 빼앗기는 문제를 온전히 드러내는 장소로 가려고 합니다. 프라이드 정치를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프라이드라는 이름으로 퀴어들을 탈락시키는 권력을 비판하기 위한 노-프라이드 파티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구금시설에 반대하고, 우리를 불법 존재로 규정하는 법에 도전하며, 우리의 삶을 범죄화 하는 횡포에 저항합니다.
성노동 비범죄화!
약물사용 비범죄화!
시설반대 감금반대!
국가는 약물사용자, 성노동자, 미등록이주민, HIV감염인을 단속하지 말라!
퀴어 커뮤니티는 우리를 경찰에 신고하지말고 혐오하지말고 지지하라!
원문 작성: 권태
원문 검토: 미겔
번역: 미겔(스페인어), 지니(영어), 츠키(일본어), Van(중국어), 미겔(카탈루냐어)
참고자료 (한국어 자료)
Comentarios